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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지 상주의 연혁



상산김씨(商山金氏)의 관향()은 상산(商山)이다

 

상산은 상주()의 고호(古城)로 서기 1018년 현종대(顯宗代) 고려사에 의하면 전국(全國) 8목중(8牧中)하나로 별호() 상락(上洛성묘(成廟), 소정(所定)이라 하고 속지(屬地) 7172영지사부(2領知事府)라 했으니 당시 이미 상주(尙州)는 영남의 중심 웅도(雄都)였다.

 

1432년 세종대(世宗代)에 나온 상고대(上古代)로부터 당시까지 종합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상주군명(尙州郡名) 변천은 상주(上州), 상락(上洛), 사량벌(沙梁伐), 사벌(沙伐), 상산(商山), 타아(?), 귀덕군(歸德軍)으로 기록하고 있음에 후대(後代)로 오면서 상산(商山)은 공식 지명으로 사용되었다.

 

상주는 경북 서북부(西北部)에 위치하고 삼국사기에는 고대 삼한시대 사벌국(일명사량벌沙梁伐, 사벌沙伐, 사불沙弗, 사화沙火)이 건국되었으나 서기249년 신라 첨해왕대(沾解王代) 신라에 의하여 병합되고 293년 유례왕대(儒禮王代) 사도성(沙道城) 개축(改築) 사벌주(沙伐州) 호민(豪民) 80여가를 이주시켰다.(삼국사기)

 

진흥왕대(興興王代) 상락 신라통일 후 전국 9州 中 하나로 당()의 도로(道路)가 사벌주였고 757년 경덕왕대(景德王代) 한자지명 상주(尙州)로 하고 1314년 경주(慶州),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로 경상도(慶尙道)라 하였으며 1392년부터 1593년까지는 경상도 감영(지금의 도청)을 경주에서 상주로 옮기고 상주목사가 경상도 관찰사 겸직(慶尙道 觀察使 兼職)200여 년간 하므로 조선초(朝鮮初)까지 영남(嶺南)의 중심지역인 바 1895년 상주군, 1986년 상주시로 분리 (分離)되었다가 1995년 상주시 군이 통합(統合)되어 현재(現在)에 이르고 있다.

 

 

 

역사 깊은 상산(상주) 땅에서 조기(肇基)하신 시조 甫尹公(諱 需)후손 모두는 현양호벌(顯揚護閥)하고 있는바 특히 상주에는 천년동안 변함없는 문화와 학문이 이어지고 그 중 우리의 선조께서는 상주6개 토착성씨(土着姓氏)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니 그 실례(實例)로 고려조 상주출신 시호() 군호(君號)를 받은 11인 중 10인이 우리 선조(先祖)요 이 지역 서원(書院)등에 배향(配享)되신 분이 11개소에 13명으로 한 문중 성씨로는 최다(最多). 상주가 영남의 4대 문향(文鄕안동, 예천, 상주, 선산)으로 된 것은 바로 우리 선조(先祖)의 학문(學問)이 뛰어남이라 상주(尙州)의 연혁(沿革)은 곧 상산김씨 선대의 역사(商山金氏 先代歷史)와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