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공파
휘 신보(臣寶)
랑장 휘 언(彦)공의 차자로 자는 의중(義重)이니 충무위 보승 중랑장 봉순대부도통사 겸 대호군과 별장을 지내시다. 충숙왕 복위 3년 갑술년(1334년)에 탄생하시고 공민왕 10년 신축년(1361년) 평안도 의주군에서 홍건적 토벌에 큰 공을 세워 충무위 보승 중랑장에 오르시고 강원도 횡성군 강림전에서 또한 지극한 공을 세워 대호군 제수되시고 공민왕 23년 갑인년(1374년) 제주에서 호목이 반역하니 이를 평정한 공이 있으며 우왕 2년 병자년(1376년) 충청도 부여군 홍산대첩에서 왜구를 섬멸한 공이 또한 컸다. 우왕 3년 정사년(1377년) 황해도 해주항에서 왜선을 대파하고 적을 함몰시킨 큰 공으로 봉순대부도 통사증직 되셨다.
공양왕 4년 임신년(1392년) 태조 이왕이 즉위하니 공은 즉시 인수를 버리고 오성으로 내려와 망국의 한에 젖어 있을 무렵 이태조가 충의지사를 포용하기 위하여 중직으로써 여러번 불렸으나 단호히 거절하고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절의를 내세우며 문을 봉쇄하고 세상을 하직하였다.
이 해가 태조 2년 계유년(1393년)이니 향년 60이다. 묘는 영광 발산해원에 있는데 실전되고 배정부인 동주 최씨도 통사명의 따님 묘도 실전됐다. 그 후 갑오년(1954년) 장성수현제 서편에 단을 모시고 제향하다가 무진년(1988년) 장사산전 목등인원에 단을 옮겨 모시고 개천절에 향사하며 또한 고려숭의전에 배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