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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군파

 

휘 득제(得齊)

 

 

상성군 휘 록(祿)공의 차자로 추충분의안사 좌명공신 중대광 삼사우사 상장군 상산군(商山君)이시다. 충숙왕 2년 을묘에 탄생하셨고 충혜왕 원년 경진 4월에 십운시문과에 장원급제하셨다. 공민왕 10년 신축에 홍건적이 침입하여 당시 추밀원직학사로 왕을 모시고 남으로 어가를 호종하며 피난할 때 장군이 되시어 적을 파하고 곤경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셨다. 이때 상주목사 조진이 군사 일 천사백을 거느리고 오거늘 왕이 대장군 공에게 거느리게 하였다.

 

공민왕 11년 임인에 판각문사가 되시고 개경수복에 공을 세우시니 추충분의만사 좌명공신 중대광벼슬을 내리시고 화상을 그려 벽에 붙이고 녹공일등이라 하시고 또한 전답백결과 노비10구도 하사하였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간신 김용이 흉계를 꾸며 백형정당 문학득배를 살해하고 후환이 두려워 공을 화산으로 유배시켰다.

 

공민왕 12년 계묘에 간신 김용을 환형으로 처형하고 공은 구면 복작되었다. 우왕2년 병진에 의주원수를 제수 받으시고 우왕 3년 정사 10월에 영주아주에 왜구가 침입하니 공이 왕안덕 목충 등과 함께 격퇴하였다. 우왕 4년 무오에 왜구가 해주평주에 침입하니 공이 최영 이희필 양백년 등과 함께 격퇴하였다. 삼사우사에 제수되시어 또 왜구가 영산밀양 등지에 대거 침입하니 왕이 공과 이성계 이림 류만수 등과 함께 대파하니 사불낭송지 및 지리산으로 격퇴하였다.

 

상산군에 봉해지시고 우왕 7년 신유에 왜구가 진포한주에 침입하니 그 지역방어책 왕안덕이 원병을 청하니 왕이 공에게 명하며 격퇴하라 하시니 공미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격퇴시켰다. 이조 태종이 추봉상상군하시고 공은 형 난계(蘭溪) 득배(得培)와 아우 낙성군(洛城君) 선치(先致)와 더불어 문장과 덕행이 당세에 출중하였고 국가가 위기 위망하면 공창대의로 출전하여 남정북벌하시니 공훈이 솥발같이 세우시며 녹공 일등이라 하시고 세칭 삼원수라 하였다.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고 용인정암서원에 배향되시고 졸년과 묘소는 실전되었다. 순조무자에 후손상종 술초 등 이단을 모으고 비를 세우니 금상주 문경산 양면 명빈포내 백영동에 공의 3자 총제공 배위 문화류씨묘 상왼편에 유좌원하고 매년 향사하다. 예조참판 진양강세륜이 비문을 찬하고 음기하였다. 순종후 경진년에 후손 군수 기환이 단비를 개수하고 병서하였다. 광복후 6·25동란에 비문 자획이 파손되어 후손의 성금으로 신미년 청명일에 단비를 개수하고 석물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