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보윤공 단소와 봉의재
시조 보윤공의 단소
시조님의 묘소는 세월이 오래되어 잃게 되어 1959년(己亥)에 전국 각지의 자손들이 뜻을 모아 '시조설단기성회(始祖設壇期成會)'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설단기지(設壇基址)를 매입하고 1962년 3월 15일에 단소를 만들어 처음으로 대제봉행을 하였다. 단소 앞 비석에는 '고려보윤상산김공수지단(高靈甫尹商山金公需之壇)'이라고 되어있고, 오른쪽 측면에는 '순종후갑진삼월○일(純宗後甲辰三月○日)'이라고 되어있다. 단소 규모는 전체 총 752평의 부지에 고려시대 묘소의 전형인 방분형(方墳形)으로 조성하였다. 사방 7.5m, 높이 1.2m이며 제단 앞에 2m의 비석이 세워져 있고,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으며 3단으로 조성된 뜰에는 문인석, 장명등, 사자석상, 망주석이 차례로 위치한다. 1962년 시조님의 단을 만들고 매년 음력 3월 15일에 대제를 올렸는데 이후 자손들이 공휴일에 행사하기를 원하여서 1987년(丁卯)에 대종회의 의결을 거쳐 양력 5월 5일로 개정하였다.
시조 보윤공 재실 봉의재(鳳儀齋)
재실은 선산 근처에 세워진 건물인데 재각(齋閣)·재궁(齋宮)이라고도 한다. 상산김씨 시조님의 재실인 봉의재는 1967년에 창건하였다. 봉의재의 주요업무는 시조님 대제 봉행을 준비하고 문중 내외의 연락업무와 외부 참례객을 접대, 단소와 재질관리, 정기간행물 출판, 족보편찬, 선조님들의 문헌연구, 씨족사 연구, 뿌리 찾기 등을 총괄하고 있다.
시조님 재실을 '봉의(鳳儀)'라 하고 정문을 조양(朝陽)이라 한 것은『시경(詩經)』「대아(大雅)」글귀에서 취하였으니 다음과 같다.
봉황명의(鳳凰鳴矣) 봉황이 우니,
우피고강(于彼高岡) 저 높은 산이로다.
오동생의(梧桐生矣) 오동나무가 자라니,
우피조양(于彼朝陽) 저 동쪽 산이로다.
봉봉처처(峯峯萋萋) 오동나무가 무성하니,
옹옹개개(雝雝喈喈) 봉황의 울음소리 화평이로다.
남쪽문을'아남(雅南)'이라 하였는데 이 또한『시경(時經)』「소아(小雅)」에 있는
글귀를 취하였으니 다음과 같다.
고종흠흠(鼓鍾欽欽) 북치고 소리하니, 절도가 맞도다. 고슬고금(鼓瑟鼓琴) 비파타고 거문고타며, 생경동음(笙磬同音) 새경의 소리 함께하니 이아이남(以雅以南) 이아 이남의 이약불참(以籥不僭) 피리소리 어긋나지 않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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