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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령파

 

휘 득화(得和)

 

 

생졸은 미상이다. 진사(進士) 휘 위()의 아들로 일찍이 벼슬길에 나가 내원서령(內苑署令)에 올랐다. 공민왕 10(1362)에 원()나라에서 공민왕(恭愍王)을 폐하고 충선왕(忠宣王)의 셋째 아들인 덕흥군(德興君, 塔思帖木兒)으로 바꾸려 할때 기황후(奇皇后)의 친족인 기삼보노(奇三寶奴)를 원자(元子)로 삼아 요동군사와 함께 고려(高麗)를 침공하였다. 당시 덕흥군이 침공하자 좌정승(左政丞) 최유(崔儒)는 덕흥군을 옹위하고 원나라 군사와 함께 압록강(鴨綠江)를 건너 의주(義州)를 포위하니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공은 안우경(安遇慶) 막하(幕下)에 호군(護軍)이 되어 압록강(鴨綠江)변을 수색하고 기마 70여기를 거느리고 적이 포위하고 있던 궁고문(弓庫門)으로 달려갔다. 안우경(安遇慶)를 지휘관으로 하고 공은 방천명(邦天命) 함석주(咸石柱) 등과 합세하여 적들과 7번에 걸친 싸움에서 원나라 군대를 모두 물리쳤으나 결국 홍선(洪瑄)이 생포되어 패주하고 안주(安州)로 퇴각했으며 선주(宣州)가 점령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공은 정예기명 3백 명과 함께 정주(定州)에 진출한 원나라 척후기병을 공격해서 패퇴시키고 원군(元軍)의 장수 송신길(宋臣吉)을 포살해 조리를 돌려 원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고려군(高麗軍)은 반격에 나서게 되고, 공은 다시 이성계(李成桂) 최영(崔瑩)등과 합세하여 18일 수주(隨州) 달천(獺川)에서 일대 회전을 벌여 원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악당 최유(崔儒)의 군사를 압록강 밖으로 몰아냈는데 북경까지 살아서 돌아간 자가 17명 밖에 되질 않았다.